2020-03-15 주일예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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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영호 작성일20-03-15 12:01 조회73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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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막 10: 32-34
오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또 가정에서 영상으로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코로나 19가 속히 이 땅에서 물러가길 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주일 전 이틀이나 삼일동안 금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점점 교회가 커지고 확장되어질 무렵 부활주일 전 40일을 사순절로 지키기 시작합니다. 사순절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 40일이니까 사순절은 예수님이 마지막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던 길을 묵상하며 기념하는 그런 절기인 것입니다. 오늘 주일은 이 사순절 중 세 번째로 맞는 주일입니다.
2000년 전 이즈음에 우리 예수님은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이 뭡니까? 이사야 56장 7절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내 집이라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또 하나님은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성전은 만민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와서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 집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벌써 몇 차례나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을 하셔서 지금 제자들은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떨며 예수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한번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먼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던가 봅니다. 이들은 오직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구나. 그래서 자신들의 어머니를 동원해 예수님께 청을 넣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한 사람은 왕이신 예수님 왼편에 다른 한 사람은 오른편에 앉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만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실망했고 두려워했고 겁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듣는 데서 믿음이 생깁니다. 히브리어로 듣다가 쉐마입니다. 그런데 쉐마의 뜻에는 듣다도 있지만 순종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즉 제대로 들으면 순종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듣질 않기 때문입니다. 열두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잘 들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 벌어질 부활사건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제대로 듣질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지나치게 예수님의 죽음에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있습니까?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은 당신의 죽음이 아니라 어쩌면 부활일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실의에 빠질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말씀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렇게 십자가의 죽음 앞에 비참하게 달아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가롯유다 뿐 아니라 수제자 베드로도 열명의 제자들까지도 어떤 자는 배반하고 어떤 자들은 달아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만 바라보는 자는 두려워 달아날 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뒤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아는 자만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1장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당신 가면 죽는다. 가지 마라. 하지만 사도 바울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왜냐? 죽음 너머에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예루살렘이 가깝다는 것은 예수님에게도 사도 바울에게도 개인적으로는 종말이 가깝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여러분이 구원받은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여러분의 주소지가 옮겨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때론 죽는 것이 영광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의 통로입니다. 죽음 뒤에 부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 이후에 영광스러운 부활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서부로 서부로 몰려갔습니다. 그 무서운 인디언들에게 무참히 살해를 당하면서도 젊은이들이 수도 없이 서부로 몰려갔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곳에 황금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황금을 찾아 죽음도 불사하고 서부로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황금보다 더 소중하고 고귀한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있는 부활의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예루살렘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성전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626전년 하나님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와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부르셨습니다. 부름을 받은 유대인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출발합니다. 장장 1500킬로가 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지난 70년 동안 바벨론 땅에서 쌓아왔던 많은 것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몸만 가지고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가장 복임을 잘 알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을 예루살렘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그곳에는 여전히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십자가만 바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십자가 다음에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그곳에서 부활의 기쁨을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를 거의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코로나 19 뒤에 있을 엄청난 고난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십자가 뒤에 부활 있듯이 이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엄청난 고난 앞에 지레 겁먹지 맙시다. 우리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문제는 다시 시작하느냐? 시작하지 않느냐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아는 자는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두려워 떠는 자는 모두 달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당당히 현재의 고난 앞에 달아나지 마시고 당당히 맞서 싸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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