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4 주일예배 (야곱과 고레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영호 작성일20-05-26 16:24 조회516회 댓글0건첨부파일
-
5.24.mp4 (476.9M) 0회 다운로드 DATE : 2020-05-26 16:24:51
본문
야곱과 고레스
사 44: 21-28
이삭은 나이 40에 리브가를 만나 결혼합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결혼 19년째 되어도 아이가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이 60에 기도 응답으로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낳습니다. 큰 아들은 털이 많아 붉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붉다 라는 뜻을 가진 에서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형 에서의 발목을 붙잡고 태어났습니다. 야, 이 녀석 욕심 많은 녀석이구나. 태어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래 발목 그것도 발뒤꿈치를 붙잡았다 해서 야곱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히브리어 야곱이란 이름의 뜻에는 발목, 빼앗다. 속이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뜻을 사기꾼 그러는 겁니다. 야곱은 이름값을 하느라 그러는지 남을 속이며 삽니다. 사기꾼 인생을 사는 겁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이름도 잘 지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말에 힘이 있습니다. 예언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도 조심해야 하고 특히 이름을 지어줄 때는 정말 기도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지어 주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고 가인이라 짓고 둘째 아들을 낳고 아벨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가인의 뜻은 얻다. 라는 뜻이고 아벨이라는 뜻은 공허, 허무, 라는 뜻입니다. 결국 아벨은 허무하게 갑니다. 말도 조심해서 해야하고 이름을 지을 때는 더욱 신중하게 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여 팥죽 한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나중엔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복을 가로챘습니다. 에서가 얼마나 분합니까? 그래서 야곱을 죽이려 합니다. 에서가 참 효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동생 야곱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참자 동생 죽으면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냐? 너 이 녀석 아버지만 돌아가시면 보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리브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자신의 친정인 밧단아람으로 보냅니다.
야곱은 외가 집에서 자기보다 더 사기꾼을 만납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품삯만 10번이나 사기를 당했습니다. 장장 20년 동안 외삼촌에게 속고 또 속으며 살았습니다. 나중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야반도주를 합니다. 도주를 할래도 어디 갈 데가 있습니까?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군사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마중 나온다는 겁니다. 너무나 두려운 야곱은 그날 밤 얍복 강가에서 밤새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성경은 이런 야곱의 기도를 천사와 씨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야곱은 이 기도에서 승리합니다. 천사와의 씨름에서 승리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야곱이 패배자의 이름이라면 이스라엘은 승리자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및 사람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거듭났습니다. 이때부터 야곱의 인생은 해가 돋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이 야곱이 기도로 얻은 이름 이스라엘에서 왔습니다.
얍복 강가 사건 이후 성경은 야곱의 이름을 어떨 때는 야곱이라 부르고 어떨 때는 이스라엘로 부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은 야곱인 이스라엘 개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것이요, 지금은 영적 이스라엘인 모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복과 은총을 입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뜻에 벗어나면 가차없는 매가 날아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 왕국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자 바벨론이란 나라를 일으켜 남유다를 멸망시키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기 200여년 전에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했을 뿐 아니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포로에서 해방시킨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대해 정확하게 예언을 했습니다. 고레스 왕이 고레스 칙령으로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 약 150년 전에 말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역사에 등장하기 15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정확히 고레스라는 이름까지 예언한 겁니다.
고레스라는 이름의 뜻은 태양처럼 빛나는 자입니다. 고레스는 그 이름 값을 한 사람입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입니다. 고레스는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의 인물입니다. 이란 사람들은 고레스는 건국의 아버지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성경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고레스이고 역사적 이름은 키루스로 불립니다.
고레스는 안산 왕 캄비세스 1세와 메대 왕 이스티아게스의 딸인 만다네 공주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만다네 공주는 결혼하기 전 꿈을 꾸었는데 꿈에 소변을 보는데 소변이 전 아시아를 뒤덮는 겁니다. 이후 결혼해서 아이를 임신했는데 태몽에 두 다리 사이에서 포도나무가 자라더니 아시아를 뒤덮는 겁니다. 만다네 공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외할아버지 이스티아게스가 점쟁이를 불러 태몽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점쟁이가 하는 말이 이는 외손자인 고레스가 외할아버지 이스티아게스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할 꿈이라 했습니다. 이게 두려운 외할아버지가 신하를 불러 어린 고레스를 죽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신하는 왕자를 죽였다가 훗날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양치기에게 이 아이를 죽이라고 대신 맡깁니다. 하지만 이 양치기도 아이를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죽은 자기 아들이라 속이고 고레스를 자신이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된 고레스가 친구들과 노는데 왕과 신하 놀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가 왕으로 뽑힌 겁니다. 한데 친구 중에 메대의 귀족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기는 비록 놀이라 할지라도 절대 양치기 아들을 왕으로 섬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화가 난 고레스가 이 아이를 죽도록 패줍니다. 결국 이게 큰 사건으로 발달해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에게까지 알려지고 아스티아게스는 이 아이가 자기가 죽이라고 했던 외손자 고레스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다시 점쟁이를 불러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묻는데 점쟁이가 놀이라 할지라도 이미 왕이 되었으니 이제 괜찮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레스를 친부모에게로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어른이 된 고레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안산의 왕이 되고 결국 외할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켜 메대 왕국도 합병을 합니다.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는 생전에 서남아시아와 중앙 아시아 뿐만 아니라 멀리 인도까지 정복을 하여 대제국을 이룹니다. 그중에 성경은 고레스가 바벨론을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점령한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을 읽어보면 고레스 왕이 바벨론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성 안에서 바벨론 왕 벨사살과 신하들은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성은 거대한 성이었을 뿐 아니라 성 주변으로 유프라테스 강물을 끌어들여 성 사면을 깊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 왕이 이 유프라테스 강물을 다른 곳으로 돌려 바벨론 성을 둘러싸고 있는 물을 말려버렸습니다. 그런 후 침략하여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바벨론을 점령한 겁니다. 다니엘 5장 31절을 보면 이때 바벨론을 점령한 왕이 메대 사람 다리오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고레스가 그리한 겁니다. 고레스는 어딜 가든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외할아버지를 꺾고 메대를 점령했을 때도 숙부인 다리오를 메대의 왕으로 세워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한 겁니다.
바벨론을 점령한 고레스가 어떻게 바벨론을 다스려야 할까? 고민하던 중 바벨론 신하 한 사람을 불러 의논을 했습니다. 누굴 불렀겠습니까? 바벨론 사람이 아니면서 바벨론의 총리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누굴까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쓴 이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고레스 왕을 만나서 이사야 44장과 45장을 읽어준 것입니다. 고레스가 너무나 깜짝 놀랬습니다. 성경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겁니다. 그것도 150년 전에 이사야가 쓴 책에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본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