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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8 주일예배 (바벨론의 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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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영호 작성일20-03-07 16:27 조회66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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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일도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가진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것의 소중함을 알 듯이 우리 성도님들을 뵙지 못하니 성도님들의 얼굴이 그립고 목소리가 그립고 사랑이 그립습니다. 다들 평안하시지요?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전염병 예방수칙 잘 지키셔서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십시오.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이 모든 위기가 끝날 때까지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바벨론의 강변에서 입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잔인한 바벨론 군사들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아버지와 오라비는 칼에 맞아 죽고 어미와 누이는 겁탈을 당하고, 어린 것들은 바위에 메어침을 당했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은 먼 길 바벨론까지 포로로 끌려가 낯선 땅 이방 나라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 시편 137편은 포로로 끌려와 바벨론 땅에 살던 한 유대인이 바벨론 강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입니다. 1절에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달리 부르는 지명입니다. 예루살렘을 시온이라 부를 때는 그곳에 성전이 있음을 마음에 품고 부르는 이름입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하지 않고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강변에 앉아 저 멀리 1500킬로나 떨어져 있는 시온을 기억하며 흐느껴 운 것입니다. 이미 불타 없어져 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하며 통곡하며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더욱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 조롱섞인 목소리로 야 노래나 한곡 불러봐라 수금을 켜면서 너희 하나님을 위한 노래를 불러라 어디 한번 들어보자. 이들이 하나님을 향한 노래를 정말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이들의 조롱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습니다. 수많은 수금들이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처럼 버드나무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연주했던 수금을 악한 자들을 위해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짓밟았던 이 악한 자들을 위해 시온의 노래 하나님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엉엉 울면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던 것입니다.  조셉 마이어가 쓴 이스라엘 설화집에 보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시온을 파괴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위해 성전악기를 연주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낳겠다며 수금을 바벨론 강변 버드나무에 걸어 놓고 예리한 칼로 자신들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고 합니다. 이 이방인들을 위해서는 결코 연주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바벨론 땅에 끌려가 포로로 살던 유대인들은 성전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성전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성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었던 성전인데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소리내어 찬양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의 마음의 소원은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전에 나아가 마음껏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시편 120편에서 134편까지 표제를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년에 3번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이 세 절기에는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평소에 이 마을 저 마을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이때만 되면 다 함께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큰 무리를 짓습니다. 손을 붙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기쁨으로 노래를 부르며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이때 부른 찬송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포로 있는 지금은 더 이상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습니다. 함께 성전에 올라가며 노래 불렀던 그 모든 사람들이 미치도록 그립지만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땅에서 세운 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하는 곳입니다. 바벨론 땅에 유대인 10명만 있으면 이들은 회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대신 회당에서 예배도 드리고 모임도 같고 결혼도 하고 자녀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강가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일은 바벨론 포로시대가 끝난 후에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 의해 계속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안식일을 맞아 기도하기 위해 강가로 나아갔다 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 한 무리의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들은 강가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여인들에게 예수 복음을 전합니다. 그때 그곳에 있던 자색옷감 장사 루디아가 예수믿고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바울과 그의 일행을 위해 내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루디아의 집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절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 시인뿐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여러 강변에 앉아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다 시온을 기억하며 흐느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포로로 끌려가 살던 유대인들이 바벨론 땅에서 깨달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그동안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바벨론 땅에도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께 기도해 응답을 받았습니다. 에스더 왕비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그발 강가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건물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 질병으로 병실에 입원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도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이 시간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예배 가운데도 임재하셔서 그 예배를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중국에 계신 선교사님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 코로나 19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확진자들을 치료하다 자신도 코로나 19에 걸려 사망한 의사 리원량과 그의 아내 푸쉐제가 중국 지하교회 성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교회 홈페이지에 ‘하늘의 별이 된 리원량’이란 제목으로 자유게시판에 리원량의 유서를 올려 놓았습니다. 이 유서에도 34살에 하늘의 별이된 의사 리원량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가지고!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어젯밤 눈바람 무릅쓰고 나를 보러 왔던 여러분! 가족처럼 저를 지키며 밤새 잠 못 이루던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며, 도시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의 안녕을 계속 믿게 하기 위해 나는 단지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 물었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리라고는. 이후 하늘이 대노하고 산하는 시들고 나는 병들었습니다. 내 가족까지 모두 병들었습니다. 봄이 오고 강물이 녹으면 가족과 만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노란 유채꽃밭에 앉아 흩날리는 꽃송이 송이 새며 하루 일 분 일 초를 보내리라 여겼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어젯밤 눈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머리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착하지, 나와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승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두렵습니다. 고향을 떠올려도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땅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도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든지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해 계십니다. 여러분의 예배를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 바벨론 포로생활 가운데 유대인들이 깨달은 아주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으로의 회복이었습니다. 왜 이런 환란이 왔을까? 왜 우리가 나라를 잃고 이 먼 타국까지 끌려왔을까? 그들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말씀을 버린 것이 그 모든 원인이고 까닭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일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번 기회에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여러분의 눈을 하나님께로 십자가로 향하십시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성전을 잃었다면 오늘 우리도 성전주일예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앞서 가진 것을 잃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전예배의 소중함이 절실히 느껴지십니까? 그것은 여러분 마음에 성전이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살던 유대인들은 한때 절망했지만 그러나 사실 바벨론 포로라는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이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생활 기간이 70년이될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19라는 이 전염병의 배후에도 역시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질병도 반드시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유대인들처럼 성전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운암신안교회가 하나님께로 돌아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오선탁님의 댓글

오선탁 작성일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 강녕하시지요?
우리모두 우리에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말씀의 은혜로 돌아가십시다.
하루 속히 성전에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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