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6 주일예배(겉 사람 속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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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영호 작성일20-01-26 13:17 조회1,096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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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사람, 속사람
고후 4: 14-18
오늘 말씀은 최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깨달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난 해 년 말부터 교회 안에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힘들고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모든 게 귀찮고 우리 전라도 말로 힘 팽긴다고 하죠? 문제는 마음인데 사람 마음만큼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바로 마음 아닙니까? 이러면 안되지. 기도해야지 다시 힘을 내야지 하지만 그렇게 안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 기도원이라도 가서 한 일주일 있다고 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 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새벽 기도하는데 제 안에 마음이 둘로 갈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 사람의 마음에는 겉마음이 있고 속마음이 있구나. 겉마음은 여전히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한데 속마음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평안한 겁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느꼈습니다. 예전에도 여러 번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려 본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분명하게 마음이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처음 경험해보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떠오른 말씀이 오늘 16절 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겉 사람이 있고 속사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겉 사람은 뭐고 속사람은 뭐냐? 겉 사람은 7절에 말하는 질그릇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하셨습니다. 이 보배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에 가졌다는 겁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분명히 여러분의 육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육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함께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설 명절 감사예배 성경구절이 무엇이었습니까?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내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내게 여러분에게 능력 주시는 자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예수의 영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내 힘으로 안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태복음 19장 26절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16절 읽으시면서 뭔가 이상하고 특별한 곳이 있다는 것 아십니까? 16절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좀 이상하다 싶은 곳 없습니까?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야, 이거 왜 이렇지? 왜 이렇게 썼지? 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띄어쓰기가 왜 이러지 잘못 쓴 것 아니야. 성경이 잘못 쓰여졌을리는 없을 텐데, 뭐예요? 겉 사람은 띄어 썼습니다. 속사람은 붙여 썼습니다. 띄어 쓰려면 둘 다 띄어 쓰지? 왜 겉 사람은 겉과 사람을 띄어 쓰고 속사람은 붙여 썼을까요? 국어사전 찾아봐도 이게 틀린 게 아닙니다. 그래서 원어성경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좀더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말로 겉 사람은 헬라어로 엑소 안드로포스입니다. 엑소는 밖에, 밖으로의 뜻입니다. 안드로포스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 헬라어 안드로포스에는 은혜로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드로포스가 사람이란 뜻인데 이 단어는 헬라어 호라오에서 생긴 단어입니다. 호라오는 바라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드로포스는 하늘을 바라보는 자라는 숨겨진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뭐냐? 하늘을 바라보는 자라는 겁니다. 사람이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사람이지, 땅을 바라보며 살면 짐승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고 하늘에 속한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겉 사람은 엑소 안드로포스입니다.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한글로 번역할 때 띄어 써야 합니다. 한데 속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에소라는 한 단어입니다. 에소는 안쪽, 안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보던 개역성경은 16절을『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육체는 날이 갈수록 낡아집니다. 마음 같아선 평생 늙지 않고 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얹그제 명절도 되고 해서 머리카락 자르러 미용실에 갔습니다. 제 앞에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파마를 하고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머리를 말고 계시는 시간에 제 머리를 자릅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제가 목사인지 알고 그러셨는지 모르고 그냥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교회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마 해남 땅 끝에 사시는 모양입니다. 땅끝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찾아오셔서 교회 나오시라고 그렇게 하시는데도 그동안 나는 선영을 모시기 때문에 못 간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에 사고를 당하셨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선영 모셔봤자 무슨 소용있냐. 이제 교회나 나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제가 이 할머니 말씀을 들으면서 야, 이 할머니가 운암동 사신다면 오늘 전도한명 하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이 할머니에게 내가 뭔가 한마디 꼭 해야겠는데 뭐라고 해야지. 마침 머리를 다 잘랐기에 할머니에게 제가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금년에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제가 보기엔 분명히 할머니였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면 안좋아 하시잖아요. 그래서 아주머니라고 한 겁니다. 할머니가 ‘이제 70 다돼요.’‘아, 그래요, 제가 보기엔 그렇게 안보이시는데.’ ‘고맙소.’‘그런데 저희 집도 예전에 제사 많이 지냈는데 다 소용없습디다. 이번에 내려가시면 꼭 교회 나가세요. 예수 믿고 천국 가셔야죠.’‘그렇잖아도 이번에는 그래 봐야 쓰 것소.’할렐루야 지금도 이렇게 교회 나오시려고 하시는 분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이런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고창 반암교회라는 시골교회에서 목회할 때 우리 큰 딸 아이가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읍내까지 약 25분 정도 걸리는데 매일 아침, 저녁 태워다 주고 태워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학교 앞 문방구 하시는 젊은 남자분이 저한테 커피 한잔 안하실래요? 그러는 겁니다. 그래 고맙다고 하며 커피를 한잔 얻어마셨습니다. 부인이 커피를 타주시는데 정말 맛있게 커피를 타셨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이분들을 전도해야 겠다. 하는데 성격이 내성적이라 쉽게 말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고맙습니다 하고 그날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또 커피 한잔 하고 가시라는 겁니다. 그날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면서 제가 제 소개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선운사 앞에 있는 반암교회 전도사인데 이렇게 커피를 두 번이나 얻어 마셨는데 꼭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교회 예배가 11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마치니까 좀 일찍 오셔서 함께 예배드리고 식사하러 가시던지 불편하시면 12시 이후에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남자분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러면 일요일에 가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주일날 이분들을 기다리는데 10시 30분도 안되었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부부가 함께 왔습니다. 그렇게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날부터 이분들이 우리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차로 25분 걸리는 거리인데도 정말 한주도 안 빠지고 열심히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러다 저는 광주로 왔고 그 성도님도 고창 읍내에 있는 고창중앙교회로 교회를 옮기셨습니다. 고창중앙교회는 교인이 한 1000명정도 모입니다. 그런데 지난 해 그 성도님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는지 고창중앙교회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해남 땅끝 할머니처럼 교회에 나오시려고 마음먹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겁니다. 이제 해남 땅끝교회 누군가가 이 할머니에게 교회 나가시자고만 하면 그 길로 따라 나서실 겁니다. 분명 여러분 주변에도 우리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런 예비된 심령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제가 보기에는 분명 할머니이신데 젊어 보이신다고 하니까 고맙소 하고 좋아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늙기 마련입니다. 겉 사람, 이 육신은 세월이 흐르면 낡아지는 것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어도 겉 사람이 낡아지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습니다. 요즘은 이걸 막으려고 보톡스도 맞고 별것 다 하지만 그러나 겉 사람이 낡아지는 것, 늙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근육에도 겉 근육이 있고 속 근육이 있답니다. 근육의 종류는 3가지입니다. 첫째는 뼈와 뼈를 지탱해주는 골격근입니다. 뼈와 뼈를 지탱해주는 이 골격근은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는 근육입니다. 손을 들었다 놓았다 이때 움직이는 것이 바로 골격근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이 있는데 내장 주변을 둘러싼 내장근입니다. 내장근은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이것을 소화시키기 위해 내장을 움직이는 근육입니다. 손은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지만 위한테 위야 움직여라 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입니다. 또 하나 심장을 움직이는 근육인 심근이 있는데 이 근육역시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한데 이 내장근과 심근에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가 들어 있습니다. 내장근은 위가 음식물을 소화시키도록 하는 근육이 내장근인데 이 근육은 음식이 있을 때만 일을 하고 위에 음식물이 없으면 쉰다는 겁니다. 여러분 의지와 상관없이 음식이 들어가면 내장근이 자동적으로 위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영양분으로 만들어 온 몸에 공급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장근이 음식이 없는데도 계속 일을 한다면 그만큼 쉽게 망가지겠죠? 한데 하나님이 위장, 대장, 소장 이런데 붙은 내장근은 음식이 없으면 쉬도록 만드신 겁니다. 여러분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심근도 놀라운 비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심근에 강한 힘을 주셔서 80년 90년 어떤 사람은 100년 동안이나 이 심근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근육을 기능면으로 나눌 때는 겉근육과 속근육으로 나눕니다. 겉근육은 겉으로 보이는 근육입니다. 우리가 100미터 달리기 선수 보면 다리통이 어떻습니까? 우람합니다. 과장되게 표현해서 제 허리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마라톤 선수를 보시면 바짝 말라 있습니다. 겉근육이 발달한 사람은 순간적인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지치고 맙니다. 그리고 계속 쓰지 않으면 그 우람한 근육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답니다. 한데 속근육이 발달한 마라톤 선수는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힘을 이 속근육이 줍니다. 그래서 건강하려면 겉근육이 아니라 속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 사람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이 겉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결국에는 썩고 맙니다. 한데 속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하셨습니다. 속사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에게만 속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속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절과 24절에서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해 말씀합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이 새 사람은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여러분의 영이 새 사람이요, 속사람입니다. 이 속 사람은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18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정말 중요한 것은 겉 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입니다.
문제는 이 속사람에 의해 여러분의 겉 사람이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이 속사람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 겉 사람의 마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번에 그걸 깨달은 겁니다. 사도 바울은 2000년 전에 깨달은 것을 저는 이번에야 깨달았습니다. (롬 7: 21-24)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3절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운다 하셨습니다. 속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릅니다. 그런데 겉마음은 자꾸 사람의 생각을 하게 합니다. 환경을 보게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고자 한다면 이 겉마음을 쳐서 속사람, 속마음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속사람에 의해 겉 사람인 육체가 움직이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훈련, 기도훈련, 봉사훈련, 인내훈련 . 17절에 이런 믿음의 훈련들이 필요합니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주셔서라도 이 겉마음을 죽이고 속마음을 강하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만큼 속마음, 속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금년 한해 여러분의 겉 사람이 속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 영적 삶을 사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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